어느 3월의 성유관.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백호와 주작의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새하얗게 새어버린 머리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한국 도술 역사 1' 수업의 교수는
겨우 11살인 아이들이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든 말든 칠판에 글을 빼곡히 써 나가고 있었다.
아이들의 일부는 칠판 내용을 받아쓰고 있었고 일부 아이들은 글을 읽어보려 노력하고 있었으며
또 일부 아이들은 낄낄거리며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당연하게도 열심히 들을 생각 없는 아이들은 뒷자리에 앉아 종이접기를 하고 책과 공책에 낙서를 하며
뭐가 그리 즐거운지 히히덕 거렸다.
그중 한 아이가 자신이 낙서하던 공책을 쭈욱 찢어 공을 만들곤 중간쯤 앉아있는 아이의 뒤통수로 집어던졌다.
뒤통수를 맞은 꼬마 남자아이는 등까지 오는 장발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렇게나 잘랐는지 덥수룩했다.
꼬마는 머리통을 긁적이며 바닥으로 떨어진 꾸깃한 종이뭉치를 집어 들어 펼쳐 읽곤 뒤를 돌았다.
한국에서 보기 드문 호박색 눈에 세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을 하고 있어 고양이나 뱀과 같아 보였다.
그 꼬마와 눈이 마주친 악동들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놀래는 시늉을 하며 호들갑 떨었다.
"괴물. 괴물이야"
"아니야 요괴야 요괴"
"우우... 잡아먹힌다..! 위험해!!"
악동들의 행동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해 보인 꼬마는 아무 생각 없는 듯 고개를 돌려 자신의 손에 들린
종이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종이에는 알 수 없는 괴물이 그려져 있었는데 털이 삐죽삐죽 솟아난 파충류가 그려져 있었다.
꼬마는 유일하게 똑같이 그려져 있는 그림 속의 동공을 쳐다보다
꾸깃꾸깃한 종이를 곱게 접어 주머니로 집어넣었다.
한참을 필기만 하던 교수는 뒤돌아 칠판용 붓을 내려두곤 어수선한 학생들을 쳐다보았다.
"자. 요괴를 본 적 있는 학생?"
아이들의 수업태도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그녀는 심심한 어투로 질문을 던졌고 그제서야 아이들은 교수를 쳐다보았다. 요괴라는 단어에 어리둥절해 보이는 학생도, 흥미로워 하는 학생도 있었다.
서로 요괴에 대해 수다를 떨어 보이며 한두 명씩 손을 들기 시작했다.
수업에 조금도 관심 없을 맨 뒷자리 악동들 중에서도 이때만큼은 손을 들었다.
그리고 교수가 말해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 목소리를 높였다.
"요괴! 요괴 봤어요! 검은 털에 노란 뱀눈을 한 무시무시한 요괴요!"
악동의 외침에 수업을 듣던 아이들은 모두 한 아이를 쳐다보았지만 그 역시 교수 혼자 모르는 듯했다.
"그래? 요괴를 만나서 어떻게 했니?"
"무찔렀죠! 이렇게 이렇게 돌을 들어 집어던졌어요. 머리를 박살 냈죠"
마치 조금 전 공책을 구겨 집어던진 듯한 행동을 과장되게 해 보이자 근처의 아이들이 재미있다는 듯 깔깔거렸다. 교수는 아이의 대답 역시 크게 관심이 없는 듯 교과서적인 내용을 읊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무시무시하고 악랄한 요괴를 물리치는 500년 전 도사의 이야기로
아이들은 그 도사가 누구인지 보다 얼마나 무서운 요괴인가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던 노란 동공의 꼬마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교수의 이야기를 집중해 들었다.
수업을 듣는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자신이 퇴마 되고 있으리라곤 전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수업이 끝나자마자 강의실 밖으로 나온 꼬마는 복도로 나오자 마자 요란하게 넘어지고 말았다.
"으하하하하!!!"
"요괴다!!! 결계! 결계가 필요하다!!"
"너무 강력하다! 도망쳐야 해!! 후퇴하라!"
자기들끼리 소리를 지르며 뛰어가는 악동을 쳐다보며 그저 눈을 깜빡여 보인 꼬마는 씩씩하게 몸을 일으켰다.
여기저기 엎어진 자신의 물건을 집어 들 때 누군가가 책을 주워주었다.
"고마워"
"웅"
책을 건넨 아이는 주작관 옷을 입고 새하얀 단발을 하고 있었다.
"쟤들이 괴롭혀??"
"왜?"
"웅?"
노란 동공의 꼬마는 큰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새하얀 단발의 꼬마 역시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래도 말이 통하지 않고 있는 듯했다.
"나는 담이라고 해. 같이 밥 먹을래?"
"밥? 응"
백발 꼬마의 질문에 노란 눈의 꼬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구카.. 하는 작은 소리가 들려왔고 담이는 그런 국화를 보며 헤헤 웃어 보였다.
이곳 학교에 입학을 한 후 가장 좋은 점을 말해보라 하면 역시 점심시간의 밥이라고 할 수 있다.
집에서는 밥투정 심하고 먹을 걸로 까다롭다는 아이도 이곳만 오면 살이 찌고 키가 크곤 했다.
담이와 국화 역시 점심시간만을 기다리는 다른 꼬마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와 이거 뭘까?"
국에 둥둥 떠있는 처음 보는 재료를 보게 된 담이는 젓가락으로 쿡쿡 찔러보았다.
아침에 들었던 성유관 예절수업에서 음식을 찔러보고 뒤적이는 짓은 좋지 못하다 배웠음에도
두 녀석은 일단 찔러보고 있었다.
"메추리알!"
담이의 외침에 국화는 갸우뚱해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눈알같이 생겼어"
"눈알? 누구 눈알이지"
"도깨비?"
"헛!!"
휘둥그레진 채 두 손으로 입을 가려 보인 담이는 누군가 들으면 안 되는 말처럼 속삭이며 말했다.
"도깨비 아저씨가 요리를 하다가 눈알을 잃어버렸나 봐"
담이의 말에 국화는 놀란 듯 큰 눈을 더 크게 떠 보였다.
"정말?"
"웅..! 국 만들다가 눈이..!"
담의 눈알 떨어지는 시늉을 보던 국화의 안색은 점점 질려갔다.
"어쩌지.."
울상이 된 국화는 눈알로 추정되는 재료를 숟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이 국은 더 이상 먹지 못할 것 같았다.
"찾아줘야 해"
"어떻게 찾아주지??"
두 친구가 고민에 빠져있을 때였다.
첨벙하는 소리와 함께 국화의 얼굴과 옷은 순식간에 젖어들어갔다.
"우아악!!! 요괴가 국을 먹어!!"
그 악동들이었다.
음식에 돌을 빠트린 악동들은 국화를 손가락질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담이는 뜨거울지 모르는 국이 잔뜩 튀어버린 국화가 걱정되었다.
국화는 눈을 꿈뻑이며 악동들을 쳐다봤다가 다시 자신의 국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다급히 눈을 굴리며 뭔갈 찾기 시작했다.
"..없어.."
"너는 어디의 요괴냐!!"
"없어졌어.. 없어졌어.."
"울 엄마가 그랬어. 악괴는 사람을 먹는다고!"
식당의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악동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질 때쯤이었다.
벌떡 몸을 일으킨 국화는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악동들을 노려보며 섰다.
지금까지 한 번도 반응해주지 않던 요괴 꼬마가 자신들을 쳐다보자 악동들은 당황한 듯 입을 닫았다.
"나빠!!"
국화의 소리에 악동들은 한 발짝 뒷걸음질 쳤고
한가운데 서 있던 대장 악동이 괜한 오기를 부리며 눈을 부라리며 주먹을 휘두르는 시늉을 했다.
"지금 사람 공격하는 거야? 요괴가 사람 해치면 어떻게 되는지 아냐?!"
"나빠!!"
담이는 울먹이며 국화 옆으로 다가와 악동을 있는힘껏 노려보며 용기있게 소리쳤다.
"도깨비 아저씨 눈 찾아내!!"
"뭐라는 거야 이 멍청이가!!"
"찾아내!!"
국화가 대장 악동의 멱살을 틀어잡으려 하자 덩치가 두 배는 큰 악동은 그런 국화를 냅다 밀어버렸다.
바닥으로 엎어지자마자 달려드는 국화의 기세에 당황한 악동은 다시 한번 패대기쳐 보지만
곧장 달려드는 바람에 악동 역시 팔을 휘적이다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 위로 올라탄 국화의 얼굴을 본 악동은 자기도 모르게 겁에 질리고 말았다.
노란 눈은 이글거리고 있었고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송곳니가 날카롭게 자라 있었다.
"괴....!!"
꼬마가 겁에 질려 중얼 거릴 때였다.
"얘들아 그만그만~"
짝짝짝 박수소리와 함께 들려온 목소리가 꼬마 둘을 떼어냈다.
다행이라 생각한 꼬마 악동은 그 목소리의 얼굴을 보고는 다시 입을 다물고 말았다.
국화와 똑같이 생긴 눈의 상급생 남자가 싱긋 웃으며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으...괴.."
"어우 꼬마야?"
"괴..괴물이다!!! 요괴다!!! 아아아악!!!!"
소리를 지르며 식당을 뛰쳐나가려는 악동의 뒷모습을 본 남자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가볍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보이지 않는 벽에 의해 튕겨져 나가듯 데굴데굴 굴러 남자의 앞으로 엎어졌다.
악동 꼬마는 다시 보이는 상급생의 얼굴에 콧물을 흘리며 다시 뛰쳐나가려 했지만
다시 그의 앞으로 굴러져왔다.
"괴물이다!!! 괴물!! 으아악!!!"
"너무하네 괴물이라니"
상급생이 싱긋 웃으며 왼팔을 들어 부드럽게 손짓하자 악동 꼬마는 공중으로 떠올랐다.
자신의 발이 땅에서 떨어짐을 느끼자마자 근처의 식탁을 붙잡았지만 11살짜리가 20인용 대형 식탁을 들어 올릴 수 있을 리 없었다.
아직 도력을 느끼기도 버거운 저학년들은 그저 상급생이 쓰는 도술에 놀라워했지만
고학년들은 도력을 모으게 도와주는 어떠한 도구도 없이 자유롭게 힘을 쓰는 13살의 아이를 보며 감탄했다.
"내 동생이 괴롭힘을 당한다는 소문이 들리던데"
"히끅.."
거꾸로 뒤집어져 딸꾹질을 한 악동 꼬마는 그 옆의 국화를 보며 다시 한번 딸꾹질을 했다.
여전히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상급생은 금방 질렸는지 악동 꼬마를 천장에 매달아버린 후 자신의 작은 막냇동생을 쳐다보며 쓰다듬었다.
국화는 여전히 씩씩 거리다가도 자신을 만지는 손길에 고개를 들어 쳐다보더니 눈물을 뚝뚝 떨궜다.
"흑흑 형아아"
"막둥이 속상해써어~ 형이 때려줄걸!!"
"눈알... 도깨비 눈알 없어졌어.."
"웅~ 도깨비 눈알이 없어졌구나~"
막냇동생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길은 없었으나 이해하는 척 토닥이며 안아들었다.
그 옆에서 같이 울고 있는 담이의 머리도 톡톡 만져주었다.
"꼬맹이들 형이 맛있는 거 사줄까?"
싱긋 웃으며 식당을 빠져나갈까 생각할 때였다.
"큰일 났네~"
식당 입구에 서 있는 한 사람과 눈이 마주친 남자는 전혀 큰일 난 것 같지 않은 말투로 국화를 내려놓았다.
그와 동시에 공중에서 눈물 콧물 흘리고 있던 악동 꼬마도 바닥에 내려왔다.
꼬마의 무릎이 바닥에 닿자마자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 들. 장 국화. 고운 담. 임 광무. 모두 따라오너라"
교수님이었다.